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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 안상홍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 해야 하는 이유!

행복한별이 2023. 1. 30. 22:19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 해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내용이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애정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단의 미혹을 받지 않게 하시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는 것이 곧 영생의 길이고 구원의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단 하나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더하면 무엇을 받습니까?
성경책에 기록된 모든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어디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까?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 즉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천국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와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다른 길을 더하거나 있는 길을 빼버리면 천국까지 올바르게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나 더 살펴봅시다.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가감하지 말라는 것은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으려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사소하게 여겨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자신의 생각은 버리고 절대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여 축복받았던 사람들의 행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의 행적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먼저 노아의 경우부터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엄청난 크기의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지으라고 하신 방주는 길이가 삼백 규빗 - 약 130m가 넘는 배며, 그것도 3층으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조선기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조선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한 개인에게 그 큰 배를 지으라고 했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보통 믿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 시대 기술로 이런 크기의 배를 만들려면 수십 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또한 많은 인력과 자재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에 소요되는 비용도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홍수로 멸망을 당할 때 노아와 그의 가족은 모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창 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세가 다 되어 낳은 독자였습니다.
후사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오랜 세월 기다린 끝에 얻은 아들로 하나님께서 긴 세월 동안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주신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고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보배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한 인간으로서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끼?
아브라함은 평생을 꿈꿔왔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 잃어버린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자기 손으로 자기 아들을 죽여서 번제로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지체없이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막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창 22:11~12, 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자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결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함으로 사랑하는 이삭을 돌려받았으며 더 큰 축복까지도 약속받았습니다.
지금 살펴본 노아나 아브라함처럼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한 사람들은 항상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나간 광야 역사에서도 동일한 교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를 따라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소망했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는 자들만 끝까지 살아남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이나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까?
말씀에 순종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알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구별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는지 계속해서 살펴봅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신 이유가 마침내 무엇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은 버리고 모든 생각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을 주셨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우리가 장차 나아갈 영원한 천국을 표상 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믿음의 광야에서 여러 가지 힘든 시험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영원한 천국 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주신 광야생활에 있었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자세하게 알아봅시다.
먼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정탐꾼의 역사부터 살펴봅시다.

[민 13:26~14:12]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게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거민들에게 맞아 죽게 하시려고 그곳으로 인도하셨겠습니까?
아무리 가나안 사람들이 기골이 장대해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는 10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수없이 약속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더 크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민 14:6~9]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그 믿음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민 14:30).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지 못하고 의심했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예외없이 광야에서 다 멸망하였습니다.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광야 2세대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수 3:14~17]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드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병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당시 요단강에는 많은 비가 내려 강둑이 넘칠 만큼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요단강을 갈라주시지 않고 그대로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도 요동치 않고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동치며 흐르던 강물이 끊어져 그 위로 쌇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으로 건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광야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영적 가나안인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히 3:18~19]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역사는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성경에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으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지 못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역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지 않으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토록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영원한 축복이 넘치는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고 순종한 사람들은 축복과 구원을 받았고 거역한 자들은 엄청난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을 절대시하고 순종하여 영생의 축복을 받읍시다.